한국은 자영업 비율이 높은 만큼 폐업률도 높아서, 일 년에 열 곳 중 한 곳은 폐업한다고 한다.
([사설] 문제는 ‘자영업 과다’, 폐업 돕고 일자리 지원을 (chosun.com)) 그런데, 자영업중 폐업률이 가장 낮은 업종이 철물점이란 게시물이 있어 의외다 싶어 그 내용을 읽어 보았다. (자영업 중 폐업률이 가장 낮은 업종.jpg | 유머 게시판 | RULIWEB)
철물점은 다루는 제품의 유통기간이 길고, 전기부터 수도까지 잡다하게 알아야 할 것이 많아 업종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고, 또 공사 현장에서 작업하다가 소량의 철물이 갑자기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세 온라인 상권에 밀리지 않는 분석이다. 공감하는 댓글이 이어졌지만, 이는 정식 통계가 아닌 유머 게시판의 글이었다.
일요일 아침 조용한 동네 상가를 지나면서, 철물점이 이미 문을 연 것을 보았다. 24시간 편의점도 아니고, 문마다 꽁꽁 닫혀있는 일요일 이른 시간에 이미 물건 진열을 끝내고 안쪽에 불을 밝힌 철물점이 그곳에 자리를 잡은 지도 내 기억으로 거의 사십 년은 된 것 같다.
다른 책에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22권 중 16권, ‘문벌정치가 나라를 흔들다’ 편을 보면,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가 철물점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방금 읽은 책의 감동을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에게 쏟아내도, 반갑게 들어줄 기분으로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6권, 249~266쪽에 있는 최제우 이야기를 요약해 본다.
최제우 아버지 최옥(崔鋈)은 경주 최씨로 신라시대 문장가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시골 선비인 최옥은 시문집을 남긴 상당한 지식인이었다. 최옥은 두 아내를 잃고 63세 때, 40대 한씨 여인을 만나, 1824년 10월 28일 아들, 최복술을 낳았다. (2024년 올해 탄신
200주년이다.)
이 아이는 아버지에게서 글을 익혔고 6세에 어머니를 잃었으며 13세 때 혼인하여 박씨 아내를 맞이하였고 16세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20세에 들어 가출하여 10년의 고행을 하였다. 그는 민중의 삶의 현장에서 모순을 겪었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민중 사상가들을 두루 접촉하였다.
최복술은 충청도 논산 땅에 은거하며 제자를 기르고 있던 이운규라는 선비를 찾아가 공부하였다. 이운규는 최복술 등에게 선도와 불교의 일을 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는 이름을 복술(福術)에서 제우(濟愚)로 바꾸고 호를 수운(水雲)이라 하였다.
1855년 (철종 6년) 그는 신비에 얽힌 종교 체험을 하게 된다. 그가 하루는 자기 집 초당에 누워있는데 금강산 유점사에 있다는 중이 찾아와 비기(秘記)를 내밀었다. 그는 3일 만에 그 내용을 풀어냈다. 다음 해 양산 천성산에 단을 쌓고 ‘천주 강령’(天主降靈)을 염원하는 49재를 올리던 중 신통력으로 숙부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과연 숙부가 작고하였다. 이때 그는 남은 논 여섯 두락(斗落: 마지기)을 팔아넘기고 집 바깥에 철물점을 내고 안에는 기도처를 만들어 못 마친 49재를 올렸다. 그는 두 여종을 해방해 한 종은 며느리, 한 종은 양녀로 삼았다.
1860년 4월, 최제우는 끙끙 앓던 중 아련하게 들려오는 상제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이 체험으로 상제(上帝: 동아시아 문명에서 신 또는 신 관념을 표상하여 이르는 말)로부터 병을 고칠 수 있는 영부(靈符)와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조화(造化)를 얻었다고 한다.
신념을 굳힌 최제우는 ‘자연의 뜻에 따라 교화’하는, 즉 인간의 본바탕은 선하니 이 바탕을 잘 이끌어 교화하는, 서학에 대비되는 동학을 창도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그야말로 신이 들려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는 천주교가 성경의 요지를 한글로 번역하여 가르치듯이 ‘용담가’ ‘교훈가’ 등 한글가사를 지어 널리 부르게 하였다. 1861년,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21자로 된 주문을 지어 염송하게 하였다.
본 주문인,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의 ‘시천주’(侍天主)는 한울님이 사람의 몸에 모셔져 있다는 깨달음으로, ‘사람이 곧 하늘’ 인시천(人是天)인 관계가 성립된다. 하늘을 받드는 사람은 사람을 하늘처럼 받드는 것과 동일하다. 마지막 대목인 ‘만사지’(萬事知)는
만사를 안다는 것으로 개벽의 시대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는 경주 주변을 시작으로 전라도 일대에서 포덕(布德: 한울님의 덕을 온 세상에 편다는 뜻으로 일반종교의 포교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하여 경주와 남원 일대는 동학교도의 주문 외는 소리로 동네가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최제우는 삼남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농민
항쟁이 일어났을 때 교도들이 참여하는 것을 적극 말렸다.
그는 아직 현실의 모순을 타파하겠다는 구체적인 의지를 드러내 말한 적이 없다. 음모에 걸려 최제우는 경주부에 잡혀갔다. 교도들이 몰려들어 풀려난 이후 그는 경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조직 체계를 세웠다. 진주에서 시작된 삼남농민봉기가 전국으로 번지면서 봉기군 가운데 관군에 쫓겨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삼정의 수탈로 희망을 잃은 민중 역시 동학으로 모여들었다.
1863년 11월, 동학에 대해 보고받은 조정에서 최제우를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최제우 일행이 과천에 이르렀을 때 마침 철종이 죽어 국상이 났다. 조정에서는 최제우를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돌려보냈다. 최제우는 좌도난정(左道亂正: 다른 종교를 전파해 유교의 가르침과 법도를 어지럽히고 문란케 한 행위)의 죄목으로 대구 관덕정 앞에서 처형되었다.
창도한 지 3년 만에 동학은 뿌리가 뽑힐 정도로 탄압을 받았으나, 최시형 등 최제우의 제자들은 끊임없이 잠행하며 동학을 재건하였다. 동학교도들은 농민들과 함께 1894년에 동학농민전쟁을 도발해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었다. 공자도 있고, 석가모니도 있고, 예수도 있지만, 한국 자생 종교인 천도교의 향방과 그 존속은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나는 최제우가 신비한 종교적 체험을 거쳤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최제우는 강설하는 자리나 산신제를 지내는 집회에서 검가(劍歌)를 부르며 칼춤을 추었다고 한다. (같은 책, 262쪽) 그것도 신기하다.
현재, 종로구 경운동에는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천도교중앙총부가 있는 수운회관이 있다. 늘 지나치기만 했던 그 건물을 오늘 처음 가까이서 둘러보았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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