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광화문 월대를 취재하면서 한자로 쓰인 광화문 현판에 유난히 마음의 여운이 남았다. 그것은 내가 한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글로 쓰인 광화문 현판을 기억하는 세대의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내가 서울의 고궁과 고궁 내 해설을 듣고 다니면서 새삼 접하게 된 한문의 위력과 조선의 왕이 한글을 반포했음에도 조선 궁궐 어디에도 볼 수 없는 한글의 흔적 때문이었다.
우리가 한글과 한옥을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자나 한문, 그리고 한글에 대해 너무 그냥 늘 내 곁에 있는 것으로만 생각한 것 같아 좀 더 관심을 두고 접근해 보았다.
일단 2년 전, 북한산 진관사 한문화체험관에서 진행된, 정광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님의 대담형식의 강의, ‘우리가 몰랐던 한글이야기’ 시리즈 12부 동영상을 관람하였다. 그리고 강의 중에 소개된 그의 저서, ‘한글의 발명’, ‘동아시아 여러문자와 한글’, ’훈민정음의 사람들’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정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한글의 첫 글자가 ‘ㄱ’인 이유는 인도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의 첫 글자가 ‘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글은 독창적인 자형의 문자이지만 고대 인도 음성학과 그리고 13세기 몽고문자인 파스파 문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근거를 들어 상술한다.
세상은 다 연결되어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1990년대에 인도 남부의 타밀나두주에 머문적이 있다. 그때 현지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타밀어로도 아빠와 엄마가 한국말과 똑같이 아빠와 엄마라고 했다.
나는 그때 그것이 타밀과 한국이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고, 대신 언어를 습득하기 전 이 세상의 모든 아기는 자기가 필요한 것을 같은 발음으로 표현 하나보다 생각했다. 아마 인류의 기원인 아프리카에 가도 아이들은 엄마 아빠 맘마를 유사한 발음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정광 교수님의 강의가 진행된 진관사는 집에서 멀지 않고 내가 가본 적이 없다. 폭염이지만 시내버스 한 번만 타면 갈 수 있는 그곳을 오랜만에 걸어서 가 보았다. 목적지에 도달해서 드러난 것은 입구에 멋지게 조성된 은평한옥마을이었다.
바로 진관사 입구이기도 하다. 쭉가면 나오는 대웅전을 향해 가면서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을 위해 사가독서(賜暇讀書, 조선시대에 국가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문운을 진작시키기 위해서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의 은전을 내린 곳을 지나갔다. 진관사 내부에 정교한 필치의 한문 현판들 속에서 한글로 쓰인 주련(柱聯, 기둥 또는 벽에 써 붙이거나 걸어 놓는 연결 글귀)이 있는 건물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은평한옥마을을 둘러보니 대문 현판을 한글로 쓴 집도 종종 보인다. 나처럼 한글을 멋진 필체로 살려 보고 싶은 집주인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마을은 방문객을 실망시키지 않을 각종 시설이 다 갖춰져 있었다. 요소요소 좋은 경관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이웃한 은평역사한옥박물관도 좋았다.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우리 구에서 멀지 않은 아름다운 안내할 곳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참, 내가 인도의 타밀나두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언어에 대한 연관성도 있지만,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의 외가가 바로 타밀나두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부통령이었을 때부터 그 사실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에 의해 인도식 문화로 성장했으며 외가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단점이,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웃음이라고 지적한 기사를 보았다.
그 시절 현지 친구들이 나와 담소 중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문화가, 건기 40도 이상의 무더운 날씨에 짜증보다 조건 없는 웃음으로 기분을 전환해온 문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옥상 물탱크를 통해 나오는 수돗물은 계란을 넣으면 익을 듯 뜨거웠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캘리포니아라면 적재적소의 웃음은 문화 에티켓이고 장착해야 할 공감의 척도가 된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www.joyseattle.com/news/56894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