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같은 더위에, 강원도 내륙의 정선, 영월, 평창을 돌아다녔다. 동강(東江)을 구경하고 싶었다. 해변에서 바라본 바다가 하늘색, 옥색, 청잣빛이라면, 차에서 바라본 동강의 물빛은 녹음을 머금은 이파리들이 뭉쳐 흐르는 한 무리의 녹색 덩어리 숲색이다. 강가에 서서 급류로 부서지는 강물을 바라보며 풍부한 수량에 마음을 적셔본다.
동강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여름 래프팅, 그리고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추진했던 동강댐 건설이다. 그러나 현재 동강댐은 백지화되었으며 2002년에 동강 일대는 환경부에 의해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교통이 불편한 오지인 덕에 동강은 오염이 많이 되지 않았고 환경과 생태계가 잘 보존된 청정지역이다. (나무위키, 위키백과)
영월관광안내지도를 보면 행정구역상 실제 무릉도원면이 있다. 한국의 자연은 강이고 산이고 야생의 살벌함보다는 사람과의 공존이 느껴지는 아늑함이 있다. 자락 마지막에는 사람의 손길로 반짝이는 농작물이 애틋하다. ‘어느 깊은 산골에 들어가 이름 모를 여인이 되고 싶은 시인의 샹그릴라’는 오늘날 정선군 신동읍의 ‘동강전망자연휴양림캠핑장’이거나 영월읍 둥글바위길의 ‘동강오토캠핑장’으로 바뀌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다.
평소 한 마리의 모기에 잠 못 이루던 나는 펜션 사장님에게 모기향을 찾았다. ‘영월에는 물이 흐르기 때문에 모기가 없어요~’ 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딱히 물린 적이 없는 것 같다. 주변에 래프팅 당일 접수라는 관광안내가 자주 눈에 띈다. 갑자기 바로 떠나는 래프팅팀과 합류하게
되었다. ‘강에서는 옷이 다 젖으니, 모든 소지품은 사무실에 맡기고 타세요’라고, 안내한다.
신분증, 카드, 그리고 핸드폰까지 있는 작은 가방을 직원에게 건넸다. 팀원들도 다 소지품 없이 최소한의 복장을 하고 기다린다. 2시간여 걸린 래프팅을 마치고 돌아오니 안내 직원은 어디 가고, 내 작은 가방은 사무실의 한 선반에 그대로 놓여 있다. 확인할 사람도 없이 그냥 가지고 나온다.
아무리 안전하다 하지만 잃어버리면 나만 불편하니까 나는 소지품은 내가 가지고 있으려는 주의이다. 그런데 단골 미장원에서도 머리하는 동안 그렇게 빽이나 외투를 맡았다가 돌려준다. 처음에는 어정쩡해하였으나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장소를 잘 택하고 일정을 잘 짜고, 안전하게 행동하면, 늘 별일 없는 것이 한국이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주변 아무에게나 물어보면 누구라도 아는 만큼 성의껏 대답해 주는 것이 묵묵한 이곳의 인심인 것 같다.
정선에서는 이층 버스로 시티투어를 했다. 투어 중 2018년 평창 올림픽 당시 알파인 스키 활강 경기장으로 쓰이던 상봉 1,561.9m의 가리왕산의 케이블카도 탔다. 태백산맥의 중앙부를 이루는 가파른 산을 땀을 흘리지 않고 케이블카로 오르면서 자연에 닿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욕망과 그 달성 능력에 감탄한다. 정선에는 매년 3월 하순 정선동강할미꽃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동강의 비경이라는 어라연(魚羅淵) 계곡을 보고 싶었다. 어라연은 물고기가 떠 있는 것이 비단결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얼마나 좋길래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까! 영월 관광안내소에서 어라연 탐방로를 알아내 진입로에 이르렀다. 6.5km 4시간 코스였다. 그런데 지도에 가파르다고 표시된 곳이 많고, 당일 날씨도 너무 더워 트레킹을 포기했다. 계절이 좀 선선해지면 다시 오기로 하고 그때는 이번에 놓친 별마로천문대에도 들릴 것이다.
대신, 조금만 걸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동강의 절경을 볼 수 있다는 평창의 문희마을이라는 곳에 갔다. 입구의 안내판을 따라 백운산 등산 코스 중 왕복 3.4 km 약 1시간 40분이라고 표시된 코스를 택했다. 천천히 가서 석양이 가까운 시간에 드디어 칠족령 전망대에 도착했다.
애써 온 보람이 있어 듣던 대로 산 사이를 흐르는 동강의 멋진 곡류(曲流)) 지형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는 산길도 좋았다. 서울의 산은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등산로에 인위적인 나무 층계가 많아졌는데, 이곳은 흙도 밟고 바위도 타는 전통 자연 등산로라 오랜만에 진땀나면서도 즐거운 산행이었다.
국도를 지나든 지방도를 지나든 동강을 주제로 달리다 보면 건너편 숲을 보거나 골짜기 사이를 달리거나, 어디서 본 듯한 아름다운 산악 지방의 영상 속을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이국적 감상에 빠진다. 마음에 드는 강변이 보이면 멈춰 내려서서 강물을 바라보면 된다.
옥수수는 옆길에서 자라는 중이기도 하고 노점에도 있고 묵는 산장의 주인 할아버지가 접시에 2개 살짝 담아 내오기도 한다. 식당에서 산채정식이나 곤드레나물밥, 그리고 막국수를 즐겨 먹었고 송어회 덮밥도 맛보았다. 음식의 재료는 신선했고, 음식은 달지 않고 조리법은 과도한 양념을 하지 않아 좋았다. 맹물같이 뒤 끝없는 메밀 막국수는 어떻게 요즘처럼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았는지 참으로 사람의 입맛이란 오묘하다.
동강의 물줄기는 한강 본류의 일부이기도 하다. 팔당을 지나 서울로 들어오면서 동강이 떠오른다. 그것은 한국을 물 걱정 없이 잘 살게 해주는 고마운 풍경이요 억 년 전부터 이어진 우리의 살림이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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