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생 86세의 배우, 신구 선생님이 출연하는 연극 ’라스트 세션’을 보러 소극장, 대학로 TOM(티오엠)을 향했다. 극장은 대학로의 한 골목 식당 옆 평범한 빌딩 지하에 있었다. 폭우로 안전 안내 문자가 연이어 뜨는 와중에 종로를 건너 광장 시장을 지나 혜화동에 오래간만에 들어섰다. 강한 빗줄기로 길에 사람도 줄어들고 노점이나 포장마차도 보이지 않는다.
극장 티켓 오피스에 당도하니 예매한 관객들이 입장권을 받기 위해 우산을 받쳐 들고 줄을 서 있다. 2023년 7월 8일부터 9월 10일까지 전체 70회 중 신구 선생님 35회 차는 일찌감치 매진되었다고 한다. 연극이 시작되는 4시가 가까워 오자 335석 극장이 빈틈없이 채워진다.
배우 신구의 얼굴은 드물게 해맑고 온화하다. 어쩌면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전석을 매진시키는 신망받는 배우로서의 관록이 그러한 표정으로 배어 나오는지도 모른다. 신구 선생님은 극작가 유치진 (1905~1974)이 설립한 남산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했다. 그의 무대 경력은 60년을 넘었다. 70년대 이후 TV 탤런트로서 그의 꾸준한 연기 활동은 대중과 호흡하는 친근한 연기 예술인으로의 성공을 이끌어 내었다.
연극 ‘라스트 세션(Freud’s Last Session)’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의 2009년 초연된 작품으로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아맨드 M. 니콜라이의 책 ‘루이스 vs 프로이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연극은 1939년 9월 3일, 프로이트가 사망하기 3주 전 영국이 세계 제2차 대전에 참여하기로 소식이 전해지는 런던 프로이트의 서재에서 펼쳐진다.
83세의 무신론자 프로이트는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이며 20세기 대표적인 기독교 변증가인 40세 C. S. 루이스를 만나 논쟁을 벌인다. 현실에서 그들은 실제 만난 적이 없지만 극을 통해 종교, 인간, 삶과 죽음에 관해 토론한다.
한국에서는 2020년 초연, 2022년 재연, 그리고 이번이 삼연이다. 초연 때부터 프로이트 역을 맡은 신구는 2022년 공연 때, 건강 이상을 느꼈고 이번 공연을 앞두고 심장박동기 이식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있는 힘 모두를 쏟는 결심 무대이다. 이날 상대역 루이스는 물리학과
출신의 81년생 배우 이상윤으로 신구와 실제 나이 45년 차이다.
소극장 무대는 한류의 기본을 보여주는 듯 능숙하다. 무대 위에서 신구는 곧고 편안하며 그의 발성은 정교하고 다채롭다. 프로이트의 마지막을 연기하는 배우 신구의 모습은 겸손하고 보이지 않게 세련되었다.
83세 극 중 프로이트가 43살 연하의 루이스 작가와의 만남을 미룰 수 없듯이 오늘 폭우를 뚫고 객석에 앉은 관객은 배우 신구의 음성을 듣는 것을 미룰 수 없었을 것이다.
2022년 공연 때는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배우가 신구와 프로이트 역에 더블 캐스팅이었으며, 이번 2023년 공연은 남명렬 배우와 카이와의 공연이 함께 준비되어 있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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