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부자리 정리하며 이불 홑청과 베갯잇을 벗겨 놓고 남편에게 세탁기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있다 나는 또 다른 베갯잇 하나를 마저 벗겨 세탁기 문을 열고 집어넣었다. 그리고 베딩bedding 코스에 맞춰 60분 돌리기 시작했다.
드럼세탁기로 바꾼 걸 후회하며 세탁한다. 시원한 물줄기 없이 찔끔거리는 물소리에 중력을 이용했다는 세탁공법이 답답하기 그지없다. 턱턱거리는 세탁소리는 빨래를 헐게하는지, 물 절약에 냅다 위로 내던지는 세탁법이 빨래를 상하게 하는지 어느 날 빨래한 옷감이 헤진 걸 알아챘다.
다음엔 꼭 물이 시원하게 나오는 세탁기를 살 거야. 사용하기 전에는 드럼세탁기의 외모에 빠져 뭔가 세련된 기계에 맘을 뺏겨 좋은 줄 알았으니 참, 후회하지만 그때 가본 시장엔 죄다 드럼세탁기뿐이었는걸.
비행기 소음 같은 소리를 내던 세탁기는 60분 돌아 딩동댕하며 멈췄다. 당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둥그런 세탁기 문을 열었다. 문 안이라고 불빛이 있는 건 아니어서 여전히 어둡다. 안쪽 바닥에 조그맣게 뭉쳐진 노란 헝겊 뭉치. 이게 뭐야? 아니 이불 빨래도 할 수 있는 이렇게 커다란 원통 안에 달랑 이것뿐이라고?
순간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빨랫거리를 세탁기안에 넣어달라고 했는데 세탁기 위에 있는 바구니에 넣었던 거다. 이렇게 소통이 안 될 수도 있다니까. 커다란 세탁기는 이 베갯잇 한 장을 빠느라 그토록 헐떡거렸다니. 얼마나 휘둘렸는지 파김치가 된 빨래 한 장. 아이구 난 또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러나. 확인도 하지 않고 세탁기 작동을 한 주제에. 당연히 빨래가 세탁기 안에 들어있으려니 했으니 서로 딴소리다.
다시 세탁기를 돌리며 투덜투덜, 세상에 이런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할까. 말이 통했다고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다 남 탓하는 나는 얼마나 모자라느냐며, 확인을 위한 ‘복창’이 왜 필요한지 알겠다며 구시렁구시렁.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에 익숙하다지만 생각이 분산되니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점점 말만 많아진다.
한마디 말로는 부족하다고 여겨 부연 설명하고 변명하고…이래저래 시끄러운 세상. 그러게 로봇을 환영하는 거라고,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심부름꾼 아니냐고.
지난번 한국 방문 시 어느 식당에 가니 주문한 음식을 로봇이 식탁 앞까지 가져다주었다. 식판을 안은 로봇이 방향을 틀어가며 내 자리로 와서 섰다. 당연히 식탁에 접시를 놓아줄 줄 알고 기다리니 로봇이 돌아서 그냥 가버렸다. 당황하고 있는 사이 로봇이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섰다. 옮기는 것까지는 아직 안 되나 보다. 음식이 담긴 접시를 옮기는 일은 손님인 내가 해야 했다.
식당은 일손 하나 벌었다. 이말 저말 없이 ‘서빙’하니, 눈치 보고 ‘립서비스’해야 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할 수 있겠다. 큰일이다. 앞으로 매사에 적용되는 로봇 때문에 사람들은 어디로 어떻게 밀려나게 될는지. 어디까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가늠할 수 없는 미래가 눈앞에 있다.
집안일을 돕는 로봇이 집집이 하나씩 있다면, 나는 이렇게 명령을 내리겠다. “이 빨랫감 세탁기 안에 확실히 집어넣어 줘.”가 아니라 “집어넣어라.”하고. 기계니까 복창 따윈 필요 없다.
단순한 기능이 사람처럼 복잡하진 않을 테니 실수는 없지 않겠는가. 사람 대신 로봇을 부릴 생각을 하니 한편 재밌다. 어떤 이상한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 밖일 수 있지만 뛰어야 벼룩이면 좋겠다. 사람 손바닥 안에 있어야 안전하지 않겠나.
그런데 난 또 오늘 이런 소식을 들었다. 로봇 인공지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이해한다는, 앞으로 십 년 내 자율적으로 인간을 죽이는 로봇 병기가 등장할 거라는 어느 학자의 섬뜩한 주장이다.
킬러 로봇이 등장한다고? 농담도 이해한다고? 아, 어쩌나. 그냥 생긴 대로 살것이지 뭐 인간을 대신할 로봇까지야. 이러다 세상 망할라. 오래 살고 볼 일이라지만, 살면 살수록 이 꼴 저 꼴 안 볼 수 있게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세탁기를 돌리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이다. 그 시절, 세탁기는 고사하고 더운물도 없이 일곱 식구 빨래를 손으로 했으니 말해 뭐해. 난 지금 편안하게 빨래를 하면서 또 그 기계가 내 맘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불평이다. 편하면 편할수록 더 말이 많아지는구나.
아서라.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만큼 지금 누릴 수 있는 문명 혜택을 누리고 살면 되지. 로봇 운운하면서 너무 비약하지 말자.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말든지 매번 지금을 살면 될 것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지 않은가.
그저 순응하고 살다 보면 나름대로 변화에 적응하겠지. 남 탓하지 말고 세탁기 탓하지 말고 내 일은 내가 확실하게 마무리하면 될 것 아닌가. 그래도 그 커다란 드럼통 안에 베갯잇 한 장은 너무했다.
신순희
수필가, ‘월간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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