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은 춥지 않고 따뜻했다. 일찍 추위가 찾아와 눈이 왔지만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추위가 없었다. 눈이 와도 금방 녹아 이틀을 넘지 못했다. 한참 추워야 할 1월에 이곳 시애틀 기온이 섭씨로 14도(C)까지 올라 4월의 날씨를 보여 주었다.
나는 비가 자주 오고 흐린 날씨 탓에 밭에 자주 가보지 못했다가 가보니 몰라보게 자라고 있는 달래, 마늘, 쪽파, 갓, 하루나가 싱싱하고, 지금 막 돋아나는 연녹색 부추는 예쁜 아기처럼 탐스럽다.
올 봄은 예년 보다 절기가 빠른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전에 봄을 시새는 꽃샘추위가 며칠 계속되었었다. 나는 2월 17일(우수날)에 봄 열무를 심었는데 심고 나서 영하 -3도(c)정도의 늦추위가 이어졌다. 나는 속으로 영하의 추위에 어린 무가 얼어 죽지 않았나 걱정을 했다. 그러나 심은 지 한 달 후에 싹이 났다.
봄 무, 상추, 달래, 부추, 파와 같은 작물은 여간해서 추위에 얼어 죽지 않는다. 한번은 이른 봄에 밭에 나가 봤더니 심지도 않은 상추가 여러 폭이 나서 꽤 크게 자라고 있었다. 2월 초순이라 아직 추워서 상추를 심지도 않았는데 작년에 떨어진 상추씨가 자연히 나서 크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 전 영하의 추위 속에서 도 자연 발아가 되어 크고 있는 것을 보니 입춘(2월 4일)이 지나면 상추를 심어도 될 것 같다.
여러 채소들 중 제일 빨리 먹는 것이 달래이다. 이 달래는 산 마늘이라 부른다. 흔히 달래는 냉이 쑥과 함께 봄나물의 ‘3총사’라고 부른다. 파와 마늘 등이 산성 식품인데 비해 달래만 알칼리 식품이다.
달래는 비타민이 고루 들어 있고 영양가가 높아 약과 같은 채소이다. 달래를 송송 썰어 양념간장을 만들어 보리밥에 싹싹 비벼먹었더니 산뜻한 봄의 달래향이 입맛을 나게 했다.
작년 10월경에 심은 마늘이 많이 자라고 있다. 잎이 너울거리고 짙은 초록색으로 보기가 좋다. 비가 너무 많이 와 습해(濕害)를 입을까 걱정이다. 물이 잘 빠지도록 배수구를 손질 하였고, 벤 곳은 솎아서 먹고 곧 풋 마늘로 장아찌를 담글 수 있다. 그런데 마늘잎이 누렇게 변색된 것은 비가 많이 와 습해(濕害)를 입었기 때문이다. 가을에 마늘을 심을 때 물이 잘 빠지게 두둑을 조금 높여 그 위에 심는 것이 좋다.
작년 9월경에 심은 하루나(봄똥)와 갓도 많이 자라고 9월경에 심은 쪽파도 새움이 돋고 있다. 곧 하루나와 갓을 뽑아 김치를 담글 수 있겠다.
콩 중에서 가장 먼저 심고 가장 먼저 따먹을 수 있는 완두콩을 심을 때가 됐다. 우수(雨水 2월 19일)가 지나자마자 심어야 하는데 올해는 따뜻하기 때문에 지금 곧 심어야 한다. 20cm 간격으로 한 구덩이에 2~3개씩 심는다. 달팽이가 먹음으로 어릴때 두어 번 달팽이 약을 뿌려 주어야 한다. 약 대신 달걀 껍데기를 부수어서 완두콩 근처에 놓아두면 날카로운 달걀 껍데기에 찔려 달팽이가 죽게 된다.
심은 지 15일이 지나면 싹이 나고 어느 정도 자라면 한 구덩이에 하나만 남겨 놓고 뽑아 준다. 2개까지 두어도 괜찮다. 이 완두콩은 성장 속도가 빨라 다른 채소보다 월등히 쑥쑥 커 심은 지 35~40일이면 하얀 꽃이 핀다.
꽃이 핀 후 10일이면 꼬투리가 맺고 하지(6월 22일경)전에 따 먹을 수 있다. 병도 없고 순 따주거나 자르는 일 없이 재배가 쉽다. 다만 넘어지지 않게 지주를 세워주어야 한다. 완두콩은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하고 옛날 보릿고개의 배고플 때 하지 감자와 함께 허기를 달래준 구황(救荒)작물이다.
감자는 3월22일 춘분 때 심는다. 감자 종자의 눈(眼)을 베여 심는데 봄에 심는 작물 중 제일 빨리 6월22일 하지 때 먹을 수 있다. 재배가 쉽다.
상추는 봄채소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늦은 봄부터 여름 내내 가을 까지 싱싱한 쌈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늘한 기후를 좋아 하므로 우수(雨水)가 지나면 파종해야 한다. 씨가 작아 파종하기가 어렵다. 한 나절 물에 불렸다가 120cm의 두둑에 25cm의 이랑을 만들어 1cm 간격으로 씨를 심는다.
상추 종류로는 적상추, 청상추, 꽃상추가 있다. 취미에 따라 좋은 상추를 사서 심는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아삭이‘상추가 대인기이다. 맛이 보통상추와 비교할 수 없으며 아삭거리는 식감이 여간 좋지 않다. 지난 가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종자를 사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종묘상에서 팔고 남은 것을 회수하고 봄 파종기에 나온다고 해서 사지 못했다.
발아가 된 상추는 자라는 대로 솎아주고 나중엔 포기사이가 20cm정도 되게 한다. 솎아낸 어린 상추를 여러 개 손바닥에 포개 놓고 쌈을 싸먹으면 맛이 일미이다. 상추 잎을 딸 때는 가위로 바싹 따야 잘 자라고 튼튼해진다. 한 포기에서 25장 가량 상추 잎을 따 먹으면 꽃대가 나와 수확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계속 상추를 먹기 위해서는 두어 달 간격으로 상추를 심어야 한다.
작년 9월에 심은 쪽파는 4월까지 먹을 수 있고 그 후로는 5월까지 씨 쪽파로 두었다가 잎이 마르면 캐어 그늘에 말리고 9월에 심는다.
대파는 3월에 씨를 뿌려 키워야 한다. 크는 대로 가을 까지 뽑아 먹는다. 작년에 크던 대파는 종이 선다. 꽃이 피면 씨를 받는다.
부추는 한번 심으면 4~5년 같은 장소에서 자라는 채소이다. 재배가 쉽다. 게으른 사람이 재배하기 딱 알맞은 것이 부추이다. 하지만 부추는 여러 해 자라면 뿌리가 얽혀 잘 자라지 못하므로 여름에 다시 포기를 뽑아내어 약한 뿌리는 제거하고 튼튼한 뿌리만 7~8개를 1~2cm씩 한 묶음으로 다시 심는다. 그리고 잎의 끝을 잘라주면 뿌리가 잘 내린다.
부추를 씨로 번식하려면 3월에 파종한다. 6월에 자란 모를 본 밭에 옮겨 심는데, 심을 때는 10개 정도를 한 묶음으로 해서 호미 한 자루 간격(한 자(尺), 30cm)으로 심는다. 부추가 20~25cm로 자라면 칼로 잘라 수확하는데 처음에는 땅에서 3~4cm 높이로 베고, 두 번째는 1~1.5cm 더 높게 벤다.
돼지감자를 심어 보자. 하도 못 생겨서 뚱딴지란 별명이 붙어 있다. 한인 마트에서 돼지감자를 사서 감자 심을 때처럼 눈을 찾아 칼로 오려서 30cm 간격으로 심는다. 돼지감자는 비료나 농약이 필요 없고 여름 가뭄에 강해서 재배하기가 쉽다. 키가 2~3m까지 큰다. 3월 초에 심으면 11월에 캔다. 9~10월에 해바라기 꽃과 같은 노란 꽃이 아름답다.
돼지감자는 <이눌린>이란 물질이 15%이상 들어 있어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당뇨병을 치료하는 이눌린이 15% 이상 들어 있는 식물은 돼지감자뿐이다. 그래서 신이 내린 명약이라고 한다. 과일을 넣고 날로 갈아 먹고 깍두기를 담가 먹으면 아삭 아삭한 식감이 무 깍두기 저리 가란다. 또 돼지감자 장아찌를 담가 먹어도 맛이 특이하다.
호박, 오이, 토마토, 고추, 가지 등은 추위에 매우 약하므로 날씨가 많이 풀려 최저 기온이 50도(F)10도(C)이상이 되면 사서 심자. 화창했다가 별안간 날씨가 추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의 종상기(終霜期, 서리가 끝나는 날짜)가 5월 15일 경이니까 그 후에 모를 사다 심는 것이 안전하다. 시애틀 날씨가 변덕스럽다. 절대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비닐로 모자를 만들어 씌우면 좋은데 한 낮에 너무 더워 타 죽을 수 있다. 밤에 씌우고 낮에는 제거해야 하는데 번잡스럽다.
어느 독자는 4월 초에 날씨기 화창하여 한국마트에서 오이모를 사다가 심었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서 죽었다고 했다. 또 사서 심었는데 또 죽어 세 번째 심었더니 죽지 않고 살았다며 6월에 심는 게 안전하다고 했다.
시애틀 기후로는 80도(F)24도(C)이상으로 기온이 상승해야 쑥쑥 잘 자란다. 참고로 채소가 자라는데 최저기온이 50F도(섭씨 10도)이하가 일주일 이상 계속되면 냉해(冷害)를 입어 크지를 못하고 잎이 노랗게 변하니 유념해야 한다. 봄 텃밭 농사 잘 지어 풍요로운 수확을 거두시를 바란다.
이성수 (워싱턴주 페더럴웨이 거주)
충남 예산 출생, 연세대 졸업
서북미 문인협회 회원 뿌리 동인
저서: 수필집 '솔바람 소리' (2004)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www.joyseattle.com/news/58994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