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도 초반의 LA거리는 미국 차로 넘쳐흘렀다. 자동차 산업이 초호황을 누리고 있을 때 내가 이민을 온 것이다. 내가 살았던 서울도 경제가 살아나면서 “마이카(My Car)”라는 개인용도의 자가용차를 가진다는 유행이 물결을 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모두들 경쟁적으로 마이카를 구매하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차량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고 도로가 마비가 되는 당시엔 진풍경인 현상도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식들은 명절에 맞춰 자가용차를 구입한 후 고향 마을에 나타나는 것도 아마 그때쯤 시작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마이카를 집 앞에 세워두게 되면 동네 이웃들이 차 주변에 모여들어 성공했다고 축하를 해주던 때였다.
나 같이 사회 초년생은 당연히 마이카의 유행하고는 거리가 멀었고 운전 면허증은커녕 운전대에 앉아 시동을 걸어 본 적도 없었다.
이민 후 첫 미국 회사에 취직했을 때 나는 친구집에서 지내고 있을 때라 버스로 회사까지 가는 데는 거의 왕복 4 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결국은 회사 가까운 곳에 숙소를 구할 때까지는 차를 몰기 위한 운전 면허증부터 손에 쥐어야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마침 회사에서 고맙게도 신형차를 나에게 제공하겠다고 했다. 나는 운전면허를 따기도 전에 자동차 딜러들 몇 군데 다니면서 미리 쇼핑부터 시작했다.
세일즈 맨에게 운전을 지도해 주면 차를 사겠다고 했더니 어이가 없어했다. 그래도 운전 기술적인 것에 대해 몇 가지를 배우고 필기시험 예상 문제집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주인이자 친구인 그에게 나의 면허증 상황을 설명했더니 한가운 주말 오전에 한 시간 정도 교육을 시켜 주었다. 필기시험도 무사히 잘 마친 후 첫 드라이빙 테스트 현장에 나가 운전 시험 감독과 함께 차를 타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운전을 막 할 참에 긴장감이 급상승되면서 갑자기 눈앞이 부옇게 탁해졌다. 주저하는 사이에 출발 기어가 끼익 큰 기계음을 내며 10미터 앞까지 밀려가는 급발진이 이뤄졌다. 당연히 시험 중단이 되었고 화가 난 감독관은 나에게 한 달간 연습을 더 하라는 티켓까지 받아서 돌아왔다.
그러나 나에게 한 달간을 버스로 더 다녀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있는 시험장을 통해 테스트 날짜를 잡고 난 후 친구를 통해 몇 차례 더 연습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동차를 몰고 도로에 나가게엔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다급한 실정이라 호흡을 가다듬고 2차 시험 운전대에 다시 앉았다.
시험 감독은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중년 여성이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깎듯이 하고 나에 대한 소개도 “한국인으로서 꿈을 찾아 이곳에 왔고 지금 간신히 직장을 구했는데 면허증을 따지 못하면 해고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농담 겸 동정을 구한 후 차를 몰았다. 차가 감독의 목을 약간 흔들 정도로 덜컹되긴 했어도 차는 앞으로 잘 나갔다. 얼마 후에는 차량의 오르막 내리막의 주차 테스트가 있었는데 연속적으로 실수가 생겼다.
여러 코스의 운전 테스트를 거친 후 시험장으로 돌아왔다. 나는 두 사람이 무사히 살아오게 된 것만 해도 나를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그만큼의 거리를 직접 차를 운전해 본 날이었다.
이제 그녀의 평가만 남았다. 나는 그녀의 눈치만 보면서 숨을 죽이고 눈을 감고 빌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날에 운전 면허증을 꼭 취득해야 되는 입장이라 내 온몸의 촉각이 그녀의 입에서 나올 결정에 곤두서 있었다.
합격 불합격이란 얘기는 하지 않고 나의 운전 중 부족한 면들만 나열해서 알려 주었다. 대부분의 항목 해서 부족함이 있었고 운전 경험이 더 필요한 것으로 평가를 했다.
또 떨어졌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에 그런데 합격을 준다고 했다. 다만 조건이 붙었는데 일주일 이상 추가 운전 연습을 한 후에 큰길로 나가라는 권유를 받았다. 거의 1-2 점 차이의 점수로 간신히 합격을 받은 듯했다. 그 배경엔 나의 절심함에 그 감독의 마음도 따라 움직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나에게 운전 면허증 합격은 경사였고 일생 중 이룬 신나는 것 중에 한 개였다. 면허증을 지참하고 나는 차 딜러에 가서 회사의 할당된 예산에 맞는 차량 중에 “시볼레 말리부”라는 세단이 눈에 들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차를 선택을 했다.
그때도 이미 일본 차들이 많이 보였지만 나는 미국 차의 널찍하면서 품위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나는 든든한 직장에다 공식적인 운전 면허증, 그리고 나만의 마이카까지 생기게 되면서 모든 세상이 달라 보였다. 시세말로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주말에 맞춰 첫 시승을 하는 날이 다가왔다. 운전 연습하기 딱 좋은 동네 운동장 근처에서 딜러와 만나 차량을 수령하기로 했다. 공장에서 막 뽑은 지라 아직도 여러 군데 비닐이 써져 있었고 풍기는 가죽의 향이 은근히 인간의 우월감을 자극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딜러를 돌려보낸 후 혼자서 첫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채널에 고정시킨 후 음악부터 크게 틀어 놓았다. 그리고 얼마간 운동장과 동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자동 변속기라 운전이 너무 쉽다는 자신감이 슬슬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얼떨결에 올림픽 대로 가까이까지 갔다가 한동안 멈칫하자 뒤차가 빵빵하는 바람에 밀려 큰길로 올라타게 되었다. 심장이 쾅쾅 뛰었지만 첫 마이카로 올림픽 대로에 올라탄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온 세상이 마치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위쪽을 보니 하늘의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쪽에 고층 건물들마다 “웰컴 미스터 리” 같은 메시지가 쓰인 형형 색깔의 엄청난 베너가 펄럭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길을 걷던 모든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갑자기 나에게 손을 크게 흔들며 큰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서커스에서나 볼만한 대규모 남녀 무용단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나의 차 위를 쌩쌩 날아다니며 파스텔 색깔의 모자와 파라솔 그리고 금색깔의 지팡이를 빙빙 돌리며 온갖 제주를 보여주는 듯하더니 갑자기 화려한 퍼레이드 그룹이 어디선가 나타나 힘찬 악기 소리를 내면서 나의 운전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코러스 팀들이 순식간에 나타나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어찌 알았는지 꼭 찍은 노래들을 불러주니 신이 나서 나도 그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합창을 하면서 신나게 앞으로 나갔다.
그렇게 환영 퍼레이드가 한참 계속되는 중에 유명한 관광지 할리우드 블러버드에 들어섰다. 그곳에선 지금까지의 환영 파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규모의 인파가 내가 올 때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그 들 모두가 격하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모두들 환하게 웃으며 “웰컴 투 아메리카!” 고막을 찢을 듯한 격한 환영의 소리를 질러 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양쪽 높은 빌딩으로부터 하늘대며 떨어지는 색색가지의 꽃가루와 꽃잎들 그리고 반짝이는 색종이들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볕에 반사되어 눈부신 장관이 펼쳐졌다. 이제 “이곳 미국에서 그동안의 외로움과 고생을 잊어버리고 이곳을 무대로 마음껏 멋진 꿈을 펼쳐 보세요”라는 메시지도 내 가슴에 새겨졌다. 나도 한 번씩 차를 세우고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그때마다 그들의 환호는 훨씬 더 열광적이었다.
그들의 환영 행사들이 마무리되는 때쯤 나는 다른 길을 택해 한적한 옆길로 빠졌다. 신호등이 보이지 않을 만큼 큰 트럭 뒤를 따라갔다. 바로 그때 그 차가 갑자기 멈추는 듯 서행을 하는 찰나에 그만 그대로 직진을 했다가 그 트럭 후방에 그대로 충돌하는 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마이카를 뽑은 첫날부터 사고를 냈으니 이것이 꿈이길 바랐지만 바로 눈앞의 벌어진 상황은 피할 수가 없었던 현실이 되어 있었다. 상대방 큰 덩치의 운전자가 내려와서 상황을 둘러보면서 나에게 걸어 보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운전대에 숙이고 떨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 자기 차량은 아무런 손상이 없으니 필요할 때 연락을 하라며 명함을 건네주면서 그냥 내 눈앞에서 유유히 사라 지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나의 과실 이었는데도 친절하게 나의 걱정을 덜어 주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보내 놓고 난 후에 내 차를 제대로 살펴보았다. 앞쪽 범퍼 한가운데가 움푹 파여 급하게 고쳐야 할 정도로 보기가 싫었다. 온갖 별난 상상을 하며 마치 거리의 제왕이 된 듯 흥분 속에 차를 몰아대더니 그에 준한 대가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상심이 며칠 동안 사라지지를 않았다.
그다음 날 딜러에 찾아가 공인 바디숍에 차를 맡기고 빠른 시간 내에 고쳐지기 만을 기다렸다. 막 태어난 내 자식이 병원에 앓고 누워 있는 듯한 생각에 공허감이 생길 정도였다. 미국브랜드 그리고 디트로이트에서 생산한 차량에 가장 단순한 범퍼 정도는 금방 교체될 거란 상식적인 생각을 하고 일주일이나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해 봤더니 앞으로 2-3주 걸려야 부품이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당분간은 보험사에서 제공해 준 렌터카로 출퇴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주 4주를 지나 2달이 되어도 범퍼가 도착되지 않았다. 분명히 보험회사만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미국의 로지스틱과 운전자 경험에 관해서는 선진국 답지 않게 엉성한 면이 있어 보였다.
그럴 때 차츰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빠른 움직임이 눈에 띄고 있었다. 우리 회사의 임직원들도 일본차에 대한 만족도가 급상승하고 있었고 도로에 다니는 차들 속에 일본차의 숫자가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었다. 일본의 미국 자동차 시장에 대한 진격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10년도 되지 않아 일본의 자동차 수출이 압도적으로 미국을 장악을 하더니 급기야 디트로이트 시를 폐허가 되도록 뭉게 버리고 말았다.
1950년에 도시인구가 한때 180만였던 미국 5대 도시가 69만 명까지 떨어지면서 최악의 범죄 도시로 변할 때까지 3대 자동차 회사들의 간부들은 인식을 못했다는 것은 가장 기본 부품인 범퍼 입고를 3개월씩이나 걸리게 했다는 것을 겪어보니 당연한 그들의 준비된 몰락으로 추정이 가능했다.
운전 면허증 얘기로부터 시작된 경험담이 여기까지 왔지만 새파란 동양인이 느꼈던 그 당시 미국에 대한 단면의 현실을 더듬어 나누어 본다.
CEO, LTC 이노베이션, Inc.
싱가포르국립대학교 경영대 초빙교수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트라 사외이사
저서 : 'Wonder', 'Tomorrow', 'Moving' (영문판, 한글판)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www.joyseattle.com/news/58647
관련기사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