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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대한부인회 창립을 주도했던 홍자 화이트 씨(오른쪽)가 당시에 불쌍한 한인 여성들을 돕기 위해 시작했던 봉사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은 초기에 대한부인회에서 함께 봉사했던 토니 워커 씨. |
"71년 타코마에 한인이 거의 없을 당시에 한국에서 온 불쌍한 처지의 군인 부인들이 너무 많았다. 라디오에서 필리핀 그룹이 모여 봉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자극을 받아 우리 한국사람들도 모여서 서로 힘을 합쳐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대한부인회(KWA)의 실질적인 설립자인 홍자 화이트(82) 씨는 1일 조이시애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인들의 파워를 과시하고 불쌍한 한인 여성들도 도와주고 싶어서 집에서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라고 대한부인회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대한부인회를 설립한 1972년에 홍자 화이트 씨는 타코마 중앙교회 설립도 주도, 처음에는 집에 5~6명이 모여 성경공부를 하는 소그룹 모임 형태로 시작해 점차 제대로 된 교회의 모습으로 성장했다고 소개했다.
홍자 화이트 씨는 "그때 한 한인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군인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고 맨발로 집에서 쫓겨났다며 도움을 요청해 달려가보니 밖에서 떨고 있는 여성을 만나 집으로 들어가 보니 냉장고에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너무 불쌍해서 집으로 데려와 쌀과 라면을 줬다"면서 "그 이후에 이러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계속 나를 찾아왔다. 당시에는 정식 회장도 아니었고 그냥 도와주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었다"고 말했다.
어려운 처지의 다른 한인 여성들을 돕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남편과 마찰을 빚고 미안한 마음에 결국 남편과도 이혼을 하게 됐다는 그녀는 "나는 다른 욕심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니 정말 도와주고 싶었다. 국제결혼해 먼나라에 와서 영어도 모르고 글도 모르는 딱한 처지를... 나는 그 마음을 안다. 그래도 나는 조금 여유가 있으니까 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농장에서 일해주고 받은 돈으로 오이, 무우를 싸게 구입해 대야에 담아 오이피클이나 단무지를 만들어 필요한 한인 여성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며 초기의 대한부인회 활동을 소개한 홍자 화이트 씨는 "당시에는 나도 외로웠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한인 여성들과 함께 뭉친 것"이라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봉사활동을 했지만 보다 체계적인 활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1972년에 주위의 한인 여성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회원 가입을 요청, 회비 2달러를 받으며 5명, 10명이 모이면서 오늘날의 대한부인회가 태동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연락을 받고 홍자 화이트 씨를 도와 대한부인회 봉사를 시작한 토니(종예) 워커(77) 씨는 당시에 시애틀의 한인은 25명 정도에 불과했고 지금과 같은 한국식품점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초창기부터 홍자 화이트 씨와 알고 지내며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던 대한부인회의 산증인인 김옥순(옥순 윌슨) 씨는 "홍자 화이트 씨는 한인 여성들의 이삿짐도 싸주고, 일자리도 소개해주고, 식사제공이나 잠도 재워주는 등 순수한 봉사자였다"라고 전했다.
김남희 씨를 회장으로 추대해 조직을 갖추고 이어 영어에 능통한 리아 암스트롱 씨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주정부 그랜트를 확보하는 등 대한부인회의 조직과 활동이 크게 강화됐다. 그 즈음에 설자 워닉 씨 등 새로운 멤버들이 합류했다는 것이다.
1977년 레이크우드 커뮤니티 센터에 대한부인회 사무실을 마련했다고 언급한 김옥순 씨는 "무료로 알고 입주했으나 나중에 월 525달러의 렌트비를 내라는 통보를 받고 대한부인회 회보에 광고를 유치하고 회원들이 낸 회비 등으로 힘겹게 충당했었다"고 회고했다.
홍자 화이트 씨는 대한부인회 회장직도 권유를 받았으나 봉사로 인한 남편과의 마찰로 가정이 파탄 날 지경에 이르자 이를 고사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혼과 함께 뉴욕으로 떠나 봉사활동도 중단했던 그녀는 그동안 대한부인회와는 거의 연락이 없었다.
현재 암 투병 중이어서 건강이 좋지 않다는 홍자 화이트 씨는 자신이 주도한 대한부인회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한다는 소식과 함께 비행기표도 보내와 설레는 마음으로 시애틀을 다시 찾아 지난 29일 타코마 뮤라노호텔에서 열린 행사에도 참석했다.
홍자 화이트 씨는 그러나, 각계 인사 등 수백명이 모인 기념행사에서 여러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자 크게 당혹스러워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도대체 왜 나를 이 행사에 불렀는지 모르겠다"며 "나를 이곳까지 불러놓고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도 않고 호텔로 찾아오지도 않았다. 심지어 나에게 인사를 시키지도 않았고 내 자리로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며 섭섭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와 관련, 박명래 KWA 이사장은 "마지막 행사준비 모임에서 창립자인 홍자 화이트 씨를 행사에서 소개하고 감사의 뜻을 표하는 순서를 갖자고 제의했으나 표결에서 부결됐다"고 해명했다.
대한부인회는 지난 1일 뒤늦게 레이크우드에 소재한 본부 대회의실에서 홍자 화이트 씨와 토니 워커 씨를 위한 조촐한 식사자리를 마련, 힘들었던 초창기 이야기를 듣고 감사패도 전달하며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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