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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02/03  조이시애틀뉴스
[레지나 칼럼] 나는 약간의 광대 기질이...

나는 한국에서 교육을 거의 마치고 미국에서 조금 더 공부를 한 후에 미국 직장에서만 30여년간 일하고 있다. 일반 직장일하고는 다르게 사회복지쪽에서 일하다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여러 단체나 다양한 프로그램 또는 복지혜택 등등 구석구석 미국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에 대한 인포메이션을 일반인들보다는 아주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나 개인의 성격탓일까? 내 주머니가 좀 비어있어도 그다지 불안해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어디를 가면 무엇이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보려는 마음이 먼저 생기니까.


내가 좋은 차를 갖고 있지 않아도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않는다. 차는 운전해서 갈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나에게 아주 좋은 차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내게 좋은 유명 브렌드의 비싼 옷이 없어도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내가 뭘입고 다니든 누가 뭐라고 해도 별신경을 쓰고 힘들어 하지 않는 편이다.


이 바쁜 세상에서 살면서 남들의 생각까지 신경을 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이다. 이곳 시애틀로 올때에 큰 아이가 5학년, 둘째아이가 3학년, 막내가 3살이었다.


우리 시어머님은 딸만 넷에 아들을 하나 낳으셨는데 워낙에 딸들이 시어머니에게 잘해서인지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시는 분이서인지 내가 셋째아이를 갖게되자 나에게 아주 쓴소리를 하셨다. 이미 이쁜 두딸들이 있는데 뭐하러 또 아이를 갖고 그러냐고?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셨다. 옛날에는 무지해서 아이들을 많이 낳았지만 요즈음 같은 세상에 배울것도 많고 할일도 많은 세상에 무슨 애들을 셋씩이나 낳느냐고? 또 한마디 덧붙이셨다. 세상은 좁고 땅덩어리는 좁아져가는데 이땅이 네땅이냐? 아이를 또갖게? 라며 나를 나무랬다.


아니, 아이는 내가 혼자 갖는 것도 아닌데 마치 나를 혼자 아이가진 사람처럼 중죄인 취급을 하시며 나를 나무래셨다. 아이들 키우느라 살림하랴, 파트타임으로 일하랴 늦게 시작한 공부하랴 정신없이 바쁜 나는 워낙에 나를 가꾸는데 소질이 없었고 더구나 치장하고는 거리가 멀었었다.
 

그런 나에게 시어머니는 아이구, 여자 손이 그게 뭐냐? 손을 가꾸어야지? 라시면서 빨간 메뉴큐어라도 칠하고 다니라면서 어느날은 당신이 쓰시던 빨간 자주빛 나는 메뉴큐어를 내게 주셨다.
 

80순을 넘기신 시어머님의 손은 항상 윤기가 나고 손가락 끝에는 붉은 장미 빛깔의 장미들이 피어난 것같이 밝았었다. 혹시라도 부엌일을 하실때는 고무장갑을 꼭 끼고 일하셨고 밤에 주무실때는 손등에 바셀린을 푸짐하게 바르시고는 면장갑을 끼시고 주무셨다.
 

그시절에 나이도 어리고 제법 순진하기만 했던 나는 시어머님의 분부대로 자주빛 나는 메뉴큐어를 손톱에 바르고는 우아하게 행동을 해보려고 했지만 워낙에 세아이들 치다꺼리하느라 또 밀린 숙제하랴 온식구 밥해먹이랴 자주빛 메뉴큐어는 일주일만에 내동댕이 쳐버리고 그이후로는 지금까지 손톱에 메뉴큐어를 바른적이 없었다.
 

첫째 메뉴큐어 바르는 시간이 답답해진다. 두번째 메뉴큐어 바른 손톱이 무겁게 느껴진다. 세번째 장갑을 끼고 일하는 것을 불편해하니 손이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시간이 워낙에 많으니 메뉴큐어가 손톱에 남아있지를 못한다.
 

남편공부를 마치고 미국의 시골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중북부 어느 지역으로 가서 살게 되었는데 그지역에  한국사람들이라고는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도 아니, 한시간 이상 달려야만 겨우 예전에 한국에 주둔했던 주한미군과 결혼한 분들 서너분이 살고 계셨다.
 

우리 가족이 자리를 잡은 곳은 미중북부의 작은 마을이었는데 주민은 2천명 정도 살고 있었고 근처에 작은 레드 아올(빨간 부엉이)라는 그로서리 하나에 국민학교, 중고등학교, 유치원 그리고 여름에만 오픈하는 아이스크림가게가 전부였다.


이곳으로 남편이 발령을 받기 전 남편이 공부하는 동안 나는 운좋게도 집에서 40분 정도 운전해서 가는 곳의 먀샬필드라는 유명백화점의 엑서서리 디파트먼트의 매니저로 일하면서 파트타임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에 백화점의 매니저가 다른곳으로 이직을 하였는데 별로 치장도 하지 않고 가꾸지도 않는 내가 일반 점원에서 매니저가 된 것은 아마도 기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생얼굴에 입술만 립스틱 바르고 생활을 했으니까 지금도 거의 화장을 하지 못한다. 이쁘게 화장하는데 자신이 없고 내가 화장을 하나 안하나 별다른 작품이 나오지를 않으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나중에 나를 매니저로 채용했던 상사에게 왜 나를 매니저로 그자리에 뽑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레지나를 재미있어해서 그랬다고 한다. 동료들이 재미있게 일하니 모두들 기분이 좋아서 열심히 일하니까 매상도 더좋아지고 기분좋은 일터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단다.


아마도 나는 약간의 광대 기질이 있는 듯하다. 새로 들어오는 직원들 교육을 주로 많이 시키는편인데 나하고 며칠간 일을하다보면 모두들 너무나 편안히 생각하고 재미있어 하니까. (계속)

 

 

 

레지나 채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chaelee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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