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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11/12  조이시애틀뉴스
[기획특집] 서북미 한인사회 뿌리를 찾아서(5)...스포켄 엑스포 계기로 한인들 몰려

1970년대 초 가정예배를 위해 모인 한인들의 모습. (이희영 박사 제공)

 

74년 엑스포가 발전 계기
톱스타 신영균씨가 불고기 팔아


서북미의 중심지인 시애틀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지방도시였던 스포켄은 1974년 엑스포(세계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발전이 가속화됨에 따라 시애틀 등지에서 한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규모의 전시행사인 엑스포는 당시 2개월 넘게 계속됐는데 전시장 한국관에서는 왕년의 한국 톱스타였던 신영균씨가 직접 불고기를 구워 팔아 방문객들의 인기를 끌었다.


하종해 전 스포켄한인회장에 따르면 엑스포 기간 중 '한국의 날' 행사 직전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 발생, 당시 행사주관을 위해 스포켄에 머물고 있던 함병춘 주미대사가 행사당일 이를 긴급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축제 분위기에 있던 한인사회도 큰 충격을 받았다. 


이즈음 스포켄에 정착한  이희영(73), 이선명(74)씨 부부는 의사부부로, 장로부부로 한인사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연대 세브란스의대 동기동창인 이씨 부부는 대학졸업 후 65년에 도미, 뉴욕 인턴과 오하이오 메디컬센터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거친 후 1970년 스포켄에 정착했다.


당시엔 워싱턴DC와 워싱턴주만 외국인에게 의사시험을 허용, 1970년 8월 시애틀에온 이들은 한달간 체류하며 부부가 나란히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주립병원에서 한동안 근무하다 74년 스포켄에서 개인병원을 열어 지금까지 무려 40년째 부부가 한 병원에서 진료활동을 하고 있다.  


스포켄에 개인병원을 세워 진료활동을 하고 있는 이희영 박사.


영주권 신청 이민자들의 신체검사를 주로 담당해온 이선명 박사는 97년 환자로부터 결핵이 전염돼 격리수용까지 당했으나 기도로 2주만에 완쾌되는 기적을 체험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박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북한 선교사업에 나서 2002년부터 서울의 유진벨재단을 통해 북한 병원에 매달 1백달러씩 구호금을 보내는 한편 자신의 병원에서 사용했던 X-레이 기계도 북한의 한 병원에 기증했다.


이들 부부는 자녀를 훌륭히 키운 것으로도 소문나 있다.  하버드대서 정치학을 전공한 아들은 현재 실리콘 밸리의 IT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이고 며느리도 하버드대 출신이다. 두 딸은 스탠포드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해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999년 환갑 나이에 휘트먼대학에서 신학공부를 시작, 평신도 목사인 이선명 박사는 한동안 스포켄 지역의 유일한 소수계 여목사로 활동하며 미국 교회에 부목사로 청빙돼 사역을 하기도 했다.


국제시인협회(PEN) 회원인 이선명 박사는 1996년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흰옷을 입으려고'를 출품했고 2010년에는 '무궁화 꽃을 보기 위하여'라는 자서전 수필집을 낸 문인으로 요즘도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이희영 박사에 따르면 1972년부터 몇몇 한인 가정이 매주일 가정예배로 모였고 1976년에는 미국 장로교회의 성가대연습실을 겨우 얻어 6가정이 참석한 가운데 감격의 첫 예배를 드렸다. 이 박사 부부는 지금도 교회 성가대에 서고 있다.


이 박사는 "초기에는 아이다호주 켈로그나 쿠어달렌의 한인들도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고 국제결혼 여성들이 많이 교회에 나왔다"고 회고했다. 지난 40여년간 한인사회의 발전을 직접 목격했다는 이 박사는  "이제는 커뮤니티에 기여하고 싶어 스포켄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부친은 서울 약수동에 개업한 가천한의원의 이정섭 원장이라고 밝힌 이희영 박사는 한방 등 대체의학을 통해 한국 의학을 소개하고 싶다며 특히 스포켄의 많은 노인들이 이같은 치료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희영-이선명 박사 부부가 40년째 함께 운영하고 있는 가정의 병원 Drs. Lee & Lee.


자녀교육에 관한 한 하종해 전 회장도 빠지지 않는다. 그의 장녀 엔지(45)씨는 스탠포드대 학부, 석사과정을 4년만에 마치고 콜럼비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아들 찰스(42)씨도 콜럼비아 법대를 나와 현재 시애틀의 최대 법률회사에서 소송전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인들의 교육열을 반영하듯 스포켄 지역 한인 2세들도 상당수가 시애틀, 뉴욕, LA 등 대도시의 명문대학에 진학한 후 현지에서 취업하는 경우가 많아 젊은이들은 점차 스포켄을 떠나는 경향이다.


차분한 분위기의 교육도시
한인들 경제적으로 안정이뤄


1973년 구성된 스포켄한인회는 근래 회장직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 전직회장 등 원로들이 번갈아 가며 회장일을 보고 있다. 하 전 회장도 3대 회장을 역임하고 1989년, 2003년에도 회장직을 맡았다.


스포켄 지역의 한인 유입은 8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특히 LA의 흑인폭동(1992년) 이후 캘리포니아주에서 많은 한인들이 이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켄 한인사회는 가족초청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 전 회장도 스포켄 정착 후 부친과 동생 등 양가의 가족과 친척을 모두 초청했고 식당 사업으로 성공한 조진호씨도 가족 수십명을 초청했다. 


현재도 스포켄 한인사회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신원택 전 한인회장도 하 전 회장의 매제이다.  초기의 몇몇 이주자 가족이 스포켄 한인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스포켄 한인사회 초기인 1970년대 한인들의 모습. (이희영 박사 제공)


워싱턴주립대(WSU),  이스턴워싱턴대(EWU), 곤자가대, 워드워스대 등이 포진한 스포켄은 차분한 분위기의 교육도시여서 자녀교육에 좋은 곳이라고 한인들은 입을 모은다.


이스턴워싱턴대는 동국대, 곤자대는 서강대, 워스워드대는 계명대와 숭실대 등과 각각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 이들 한국대학의 유학생들이 많이 오는 편이다.


스포켄 한인들이 주로 종사하는 업종도 시애틀 등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식당, 세탁소, 모텔, 주유소 등이다.


식당업계에서는 시내에 가장 큰 중국음식점 가운데 하나인 케이론 가든과 차이나 사우스 등 3개의 대형 식당을 운영하는 조진호씨가 손꼽힌다.  스포켄 최대 규모의 대형 세탁공장을 운영하며 여러 곳에 드랍샵을 두고 있는 세탁업주 등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룬 한인들이 상당히 많다.


스포켄에는 순복음교회, 침례교회, 천주교회 등 모두 7개의 한인교회가 있다. 가장 오래된 스포켄 한인장로교회는 1976년 하 전 회장과 이희염 박사 부부 등이 중심이돼 설립한 교회로 한인여성과 국제결혼한 미국인들도 출석하고 있다. 


스포켄 다운타운의 한 공원에는 자매도시 제천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스포켄 다운타운에 자리잡은 '스포켄 리버 프론트 파크' (Photo: Wikipedia)

이선명 박사의 자서전 '무궁화 꽃을 보기 위하여' 표지.

 

관련기사: [기획특집] 서북미 한인사회 뿌리를 찾아서 (4)...가족 초청으로 형성된 스포켄 한인사회


기사/사진=조이시애틀뉴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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